몇 년 전, 김밥 분야에 새바람이 불어 닥쳤습니다. 프리미엄 김밥입니다. 김밥 한줄에 당연 1,000원 또는 1,200원하면서 200원만 인상되어도 일부 언론에서 서민들은 어떻하라는 말이냐, 이제 먹니 안먹니 할 때에 3,500원짜리로서 ‘프리미엄’을 표방한 김밥이 등장하였고, 지금은 김밥의 한 영역으로서 김밥맛의 새로운 영역을 펼쳐 놓고 있습니다.
“김밥이 꼭 싸야만 하나요?”로서의 이러한 시도는 더욱 확장되었고 지금은 내용물을 더욱 차별화하고 고급화한 1만 5천 원짜리 1만 원짜리 명품 김밥이 등장하였습니다. 김밥을 서민테두리 속에 고정시키면서 얼마 이상을 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사회의 법이라면 최소한 김밥에 관한 한 새로운 김밥맛을 볼 기회는 없었을 것이기도 합니다. 아마 지금도 시금치 단무지 계란지단 정도만 들어간 김밥을 먹고 있을 것입니다.
1만 2천 원짜리 스파게티는 당연하게 사먹으면서 왜 1만 원 짜리 김밥에는 손가락질을 해야 하는가. 10,000원짜리 김밥을 음식으로서만 사 먹는 것이 아닌, 새로움을 사 먹고 미래를 사 먹고 창의를 사 먹고 역동성을 사 먹는 것이기도 하지 않은가. 이러함에 기꺼이 함께 하는 사람과 거부회피하는 사람, 둘 중 과연 어느 사람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발전적이고 미래적일까. 우리나라가 사회주의 통제경제가 아니고 시장경제 자유경쟁체제라면 제품이 시장에서 죽고 살고는 가격과 품질에 따른 소비자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소비성향이나 패턴은 각 소비자별 고유의 형태를 띄고 있는 것이지 모든 사람이 꼭 동일한 소비성향이나 동일한 소비패턴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며, 특히 각 소비자는 지출 능력에서 각자의 입장과 처지를 갖고 있는 것인데 이러한 소비지출 능력에 따라 기호나 성향도 달리 표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국민 소득 수준에 따라 그 나라의 전체적 소비행태도 일정 달리 표출된다고 보는데, 우리나라도 선진국에 진입하면서 이제 3,500원짜리 프리미엄 김밥도 가끔은 먹을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있다고도 봅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부풀려 말하느냐고요? 지금 바로 거리에 나가 김밥집들을 다녀 보고나 부풀려 말하는지 여부를 말하여야 할 것입니다. 짜장면은 맛있는 음식으로서 일반 서민이나 백만장자나 누구나가 좋아합니다. 그런데 서민들이 먹는다하여 한그릇에 3,000원 또는 5,000원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또는 편견 때문에 그 가격에 맞게 짜장의 품질이 고정되어 있다면 그 사회는 죽은 사회입니다. 9,000원짜리 짜장도 나와서 자기의 소비 능력이나 소비성향에 따라 저가 또는 고가의 짜장면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쩌다 한번은 고기가 듬뿍 들어간 9,000원짜리의 맛있는 짜장면을 먹으면서 “열심히 일한 당신, 음식으로 풀어라”의 먹는 즐거움에서 삶을 위로받고 가족의 단란함도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대옥홈페이지 현대옥에서드리는글 게시판에 ‘요리에 인간의 품위와 욕망을 담다’라는 글을 쓴 적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동물에게 있어 먹는다는 것은 오직 생존 차원이지만 인간은 동물과 달리 생존을 넘어 ‘먹는 즐거움’을 끊임없이 추구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맛'을 향한 ‘본능’은 이성으로는 설명이 안되기도 하는데, 맛만 있으면 어느 식당이 산 속에 있어도 다 찾아 갑니다. 동물은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빨과 발톱만의 도구로서 그저 같은 맛의 생식만을 하고 있지만, 인간은 불을 발명하고 소금을 제조하고 설탕 조미료 향신료 오븐구이기 냉장냉동고 등을 통하여 그야말로 끊임없이 ‘더 맛있는 음식’을 추구해 왔습니다. ‘맛 없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품위를 손상시키는 것이기도 하면서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이렇다고 볼 때, 인간으로서의 음식점주나 조리사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소비자 고객은 ‘식당에서의 음식’을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일까. 식당음식을 볼 때, 가격이 우선인가 맛이 우선인가. 끊임없이 '더 맛있는 음식‘을 추구하는 ’인간‘을 고객으로 맞이하는 식당에서의 음식은 끊임없이 '더 맛있게' 변화 개선 진화해야한다는 것은 너무 자명한 것입니다. 개선진화를 해내려면 현실로서 자본이 투자되고 비용이 발생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음식값도 그에 맞게 상향되어야 품질개선도 진화도 가능한 것입니다. 품질개선과 환경개선은 차치하고라도, 식재료값이나 인건비 등의 원가가 상승하였다면 현재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연 음식값을 올려야 가능하지 않겠는가. 음식값은 올리지 말고 품질을 낮추고 맛을 낮추어 수지를 맞추라는 것은 맛을 향한 인간의 속성과 본능을 무시하면서 장사하라는 얘기로서 어서 망하라는 얘기나 똑 같습니다. 음식값을 안올리고라도 품질유지를 하는 방법은 국가가 보전해 주는 것입니다. 콩나물국밥을 두고서 ‘맛’이 아닌 ‘가격’을 말할 때 즈음이면 으레 서민음식이라들 합니다. 서민음식이니 음식값을 올리지 말라는 것으로서 원가가 올라도 서민을 위해서 자영업자가 망하면서 장사하거나 또는 반찬 가짓수 등을 줄이고 품질을 낮추어 수지를 맞추라는 것으로서 그 어느 것도 단1%도 수용 불가한 영역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자신들이 과연 콩나물국밥식당을 해보기라도 하면서 식당에서 서빙이라도 하면서 고객층을 나름 분석해 보기라도 해놓고 그렇게 말한다면 그나마 ‘일부’ 맞는 얘기라고 동의해 줄 수는 있습니다. 콩나물국밥은 소위 ‘서민'만의 음식이지는 않습니다. 짜장면이 서민부자 차이없이 남녀노소 누구나가 즐겨 먹는 음식이듯. 콩나물국밥도 가난한 ‘서민’만이 먹는 것이 아니고 서민부자 구분없이 우리나라 사람 누구나가 좋아하는 ‘국민음식’입니다. 특히 가정에서 손 쉽고 저렴하게 끓여먹는 콩나물 ‘국’이 아닌, 식당에서 파는 ‘뚝배기국밥’으로서의 ‘콩나물국밥’은 이미 소위 그 서민음식의 단계를 뛰어 넘고 있다고 봅니다. 가정에서도 쉽게 끓여먹는 콩나물국밥을 왜 나가서 5천~7천 원의 상당한 돈을 주면서 식당소비를 하고 있을까? 콩나물국을 가정이 아닌 식당에서 소비하는 사람들은 어느 계층의 사람들일까? 소비력을 갖춘 계층은 가격보다는 맛에 더 치중하고, 식도락 성향의 소비자들 역시 가격보다는 맛을 찾는다라고 볼 수밖에 없다할 것입니다. 현대옥가맹본부도 엄연히 하나의 음식기업체로서 이미 콩나물국밥 소비성향과 주된 소비계층 정도는 분석하고 있으며 그에 맞는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여러 불로그포스팅에서는 “누가 콩나물국밥을 돈 주고 사먹냐. 집에서 끓여 먹는 것이지”, “그 돈이면 차라리 순대국밥을 먹겠다”, “콩나물국밥이 맛있어 봤자 얼마나 맛있을라고 했는데 진짜 맛있네”라고들 쓰여지곤 했는데, 고기국밥이나 순대국밥에 대해서는 그렇게 쓰여 질 수 없는 글들이었던 것입니다. 즉, 다수 국민으로서는 순대국밥이나 짜장면은 식당에서 돈 주고 사 먹을 음식이지만 콩나물국밥은 돈 주고 사먹기 아까운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부 계층만이 그래도 돈을 주면서 식당소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계층은 누구일까? 식당 입구에 서서 중산층인지 부자인지 서민이지를 일일이 설문 파악해 보지는 못하였지만 분명 소위 그 서민음식만은 아니다라고 일찍부터 간파하였고, '국'이 아닌 제대로된 '뚝배기콩나물국밥'을 한번 먹어보기만 하면 우리나라 사람이면 남녀노소 누구나가 좋아 할 수밖에 없는 소울푸드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이에 기반하여 “우리가족만 안먹어 볼 수 없다”와 “이제 우리가족도 국밥외식을 한다” “오늘은 엄마를 쉬게하자. 오늘은 우리가족 현대옥 가는 날”이라는 표현과 구호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즉, 콩나물국밥의 ‘주된 고객’은 경제력이 있는 ‘중산층’이라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경제적 빈부의 신분과는 상관없이 콩나물국밥의 대미무미한 맛을 제대로 느끼고 즐기는 중독된 소비자들이라는 인식 아래, 소비층을 중산층을 넘어 상류층과 서민층도 이제 콩나물국밥식당을 찾도록 하고자하는 경영적 판단을 작동해 왔던 것입니다. 위와 같은 여러 측면을 종합 고려하여 현대옥의 품질정책과 가격정책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저희 현대옥은 콩나물국밥을 소위 그 ‘서민음식’에 맞는 품질과 그 가격을 당초부터 탈피하였고, 소위 ‘중산층 음식’에 포커스를 맞추어 품질과 가격을 책정해 왔던 것입니다. 지금 시장에는 3,800원짜리 콩나물국밥식당들이 프랜차이즈사업을 펼치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시장은 이렇게 양분화되어 있었고, 현대옥은 그럴수록 더욱 더 품질고급화에 주력하여 왔습니다. 앞으로의 콩나물국밥시장은 더욱 세분화되리라고 봅니다. 즉 저가저급, 중가중급, 고가고급의 콩나물국밥식당들로 더욱 분화된다고 봅니다. 이러함의 모두는 소비자니즈에 맞춘 자연발생적인 것으로서 자본주의 시장경제하 매우 필연적 기업활동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콩나물국밥시장은 3,900원짜리 저가식당, 5~6,000원짜리 중가 식당, 7~8,000원짜리의 고가식당으로 세분화되어야 하고, 소비자들은 가격이나 품질, 맛, 기호 등에 따라 소비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소비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 곧 소비자 이익이기도 한데, 이것이 진정한 소비자 친화적 환경인 것입니다. 기업들은 누가 과연 이 소비자니즈에 제대로 부합하느냐 내지는 누가 먼저 선도해 가느냐에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시장에서의 성공자는 트랜드를 선도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가는 도전과 창조의 기업일 것이라고 봅니다. 시대에 뒤쳐지거나 확실한 자기 모습이 없으면 분명 도태되고 말 것입니다. 성공한 기업은 사회에 내놓을 것이 많지만, 망하는 기업은 곳곳에 피해를 끼치게 됩니다. 누가 왜 콩나물국밥을 두고서 자꾸 서민음식이라는 테두리를 치려고만 하는가? 과연 그 사고와 외침이 한 치 틀림이 없다고 그렇게 자신할 수 있는가? 왜 먹는 음식을 두고서도 자꾸 서민부자를 가르려 하는가? 좀 더 사려하고 좀 더 조신하면서 그러나 단호히 외치는 바, “콩나물국밥도 인간의 품위와 욕망을 담아 넣는 맛있는 음식이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콩나물국밥에도 당연히 ‘프리미엄급’이 존재하여야 합니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것으로서의 ‘프리미엄’ ‘명품’!! 우리 모두는 경제적 신분으로나 ‘인간’으로나 그 곳을 지향하며 가야 하는 것이지 왜 자꾸 아래로만 끌어 내리려고 하는 것일까. 먹는 음식에까지에도 왜 자꾸 서민과 부자의 계급 논리로 양분하고 분열시키려 하는 것인가. 소비자는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이기 전에 ‘끊임없이 맛있는 음식을 욕망하는 인간’입니다. 현대옥2세대는 프랜차이즈를 출범시키면서 ‘음식평등’을 뚜렷히 인식하였고 현대옥에서드리는글에서는 프랜차이즈가맹사업의 사회적 역할로서 ‘음식평등 실현’을 뚜렷히 표방하기도 하였습니다. 서민도 어느 날은 값 나가는 유명 음식을 가까운 곳에서 먹을 수 있어야 하고, 훗날 돈을 벌게 되면 즐겨야 할 음식으로서 비싼 음식들도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서민서민 그러면서의 보호도 필요하겠지만 무언가 장려하는 분위기도 필요치 않은가? 사회에는 역동성과 진보진화함이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은 무발전의 어둠인 것입니다. 나이트클럽에 가면 음악 쾅쾅거리고 조명 현란해야 하고, 호텔에 가면 청결하고 안락해야 하듯이, 식당에 가면 맛있고 친절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소비만족’을 제공하려는 직업의식이 투철하다면, 그리고 이러한 소비만족을 기꺼이 즐기고자 한다면, 기업은 그야말로 ‘품질’을 제공하고, 소비자는 기꺼이 ‘가격’을 지불해야 합니다. 호텔을 찾아 가서는 왜 여관보다 비싸냐고 억지부린다면 다툼판의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현대옥은 프리미엄 콩나물국밥을 지향합니다. 일부 다른 콩나물국밥식당들은 중저가 식당으로서 그에 맞는 역할을 해내면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로써 서로 건전하고 건강하게 선의의 경쟁을 펼치면서 소비자 고객들께는 선택의 폭을 넓혀 드리면서 다 함께 ‘공존’과 ‘평화’를 누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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